SL 벤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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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포르트 리스보아 이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 SLB)는 리스본을 연고로 하는 포르투갈의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축구 팀이 가장 유명하지만 풋살, 농구, 핸드볼, 배구팀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벤피카는 IFFHS로부터 20세기 유럽 축구 클럽 중 9번째로 가장 성공적인 클럽으로 선정되었으며, FIFA로부터는 12번째로 성공적인 20세기 축구 클럽으로 선정되었다. 1933년 프리메이라 리가의 창단 멤버로, 2부 리그로 강등당한 적이 없다.
클럽의 인기와 성공에 따라 벤피카는 '트레스 그란데스(Três Grandes)'[3] 중에서 가장 두꺼운 팬덤을 자랑한다. 현재 포르투갈 구단 중 가장 많은 1400만 명의 해외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벤피카의 서포터들은 벤피퀴스타"(Benfiquistas)로 불린다.
FC 포르투, 스포르팅 CP와 라이벌 관계에 있다.
2. 역사
'''1904년 2월 28일''', 그루푸 스포르트 리스보아(Grupo Sport Lisboa)는 리스본 서남부의 젊은이 24명에 의해 창단되었다. 이후 1906년 그루푸 스포르트 벤피카(Groupo Sport Benfica)와 손을 잡으며 스포르트 클루브 지 벤피카(Sport Clube de Benfica)로 이름을 바꾸었다.
국내에서 벤피카는 37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29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 7번의 타사 다 리가, 8번의 수페르타사 우승을 경험하였다(2020년 기준). 1972-73 시즌 처음으로 '''리그 무패 우승'''을 거두었다. 이는 2010-11 시즌 FC 포르투가 2번째로 리그 무패 우승을 거두기 전까지 유일했었다.
유럽 대회에서는 1960-61 시즌과 1961-62 시즌에 연속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룩하였다. 허나 이후로는 유럽의 강호로 분류되면서도 계속되는 준우승과 함께 그 위상도 조금 낮아졌는데,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2.1. 구트만의 저주
벤피카가 유럽을 평정할 당시 팀의 최전성기를 이룩하던 '''벨라 구트만'''[4] 감독은 프리메이라 리가와 유럽대항전을 휩쓸고 보드진에게 급료 인상을 요구했다.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당연히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보드진은 차갑게 거절했고, 그 소식에 불쾌함을 나타낸 구트만 감독은 팀을 떠나면서 벤피카에게 크나큰 저주를 내린다.
벤피카의 서포터들은 처음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구트만이 나간 그 이후 정말로 벤피카는 지금 현재까지도 유럽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 내용들을 보자면 정말 벤피카 팬들 입장에서는 눈물이 절로 나오는 저주다. 벤피카 팬들에게는 더 절망적인 내용은 '''2021년 기준으로 저주가 풀리려면 아직도 41년이 남았다(...)''''''앞으로 100년 동안 벤피카는 유럽 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야.'''
'''Sem mim, nem em cem anos o Benfica vai conquistar outra taça europeia!'''
- 1962-63 유로피언컵 결승전 1-2 패배 AC 밀란
에우제비우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 나갔지만 밀란의 주제 알타피니에게 두골을 얻어맞고 역전당했다. 그리고 이것을 기점으로 저주가 시작됐다. 이게 특히 아쉬울 수 있는 게 이 때 우승했다면 벤피카는 3연속 유러피안컵 우승으로 포르투갈 팀들 중 유일하게 UEFA 영예의 배지를 부착할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었다(...)
- 1964-65 유로피언컵 결승전 0-1 패배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1967-68 유로피언컵 결승전 1-4 패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후반전에 벤피카가 동점을 만들면서 경기는 연장전까지 갔지만 그후 3골을 내리 얻어맞고 진다(...)
- 1982-83 UEFA컵 결승전 1-2 패배 RSC 안데를레흐트
- 1987-88 유로피언컵 결승전 0-0 승부차기 (5-6) 패배 PSV 아인트호벤
당시 PSV는 8강전 보르도전과 준결승 레알전 모두 1, 2차전 무승부를 거둔 후 승부차기로 올라왔다.. 결론은 5연속 무승부로 우승(...) 트레블까지 달성했다. 당시 PSV의 감독을 맡고있던 사람은 바로 거스 히딩크
- 1989-90 유로피언컵 결승전 0-1 패배 AC 밀란
결승전을 앞두고 에우제비우와 수뇌부는 구트만의 묘소에 참배를 하였지만(...) 그 결과는 당시 밀란이 자랑하는 오렌지 삼총사 멤버 중 한 명인 레이카르트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1-0 패배.
- 2012-13 유로파리그 결승전 1-2 패배 첼시 FC
바르사와 셀틱 FC때문에 유로파로 밀려났으나 30년만에 유로파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나 함께 챔스 조별리그에서 유로파로 밀려난 첼시 FC에게 패하며 우승을 헌납하였다. 후반전까지 1대1로 잘 버티다가 추가시간이 다 끝났을 무렵 첼시의 마지막 공격인 코너킥에서 이바노비치에게 헤더 한방 얻어맞고 그대로 끝났다.
- 2013-14 유로파리그 결승전 0-0 승부차기 (2-4) 패배 세비야 FC
유로파리그에서 2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하지만 이번엔 세비야 FC에게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또 져서 준우승했다.
그럼에도 벤피카는 1962년 마지막 우승 이후로 유럽대항전 8강에 20번[5] 진출하였고, 준결승에서는 4번 진출[6] 하였다. 특히 강호들이 즐비한 챔피언스리그에서만 '''결승전을 제외'''하고도 8강이상의 성적을 '''10번'''이나 냈다.[7]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결승전은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강호'의 이미지는 옅어지고 빅클럽에 유망주를 팔아 먹고사는 셀링클럽 취급을 받고 있다.이처럼 구트만 감독의 저주와 함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결승전 5회, 유로파리그 결승전 3회에서 '''우승 기회를 싸그리 다 날려버린 역사'''는 벤피카 최대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3. 2010년대
3.1.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맨유를 상대로 1승 1무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보였다.
16강전 상대이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1차전 원정에서 3:2로 졌다. 그리고 2차전, 벤피카 안방 경기에서 2:0으로 벤피카가 이기면서 골득실로 앞서 8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제니트 콧대를 뭉개줬다.
8강 추첨 결과 첼시 FC가 맞붙게 되었는데 1차전 안방 경기에선 0:1, 원정 경기는 1:2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타사 다 리가 결승에서 질 비센테 FC를 2-1로 이기고 4연패에 성공했다.
리그는 포르투에 이어 2위로 마감했다.
3.2. 2012-13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 추첨 결과 G조의 FC 바르셀로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셀틱 FC와 한조가 되었다. 그리고 1차전 셀틱 원정에선 득점 없이 비겼다. 2차전 바르셀로나와 홈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하고 3차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게도 패하면서 1무 2패로 꼴찌로 추락했다. 이후 모스크바, 셀틱을 안방에서 각각 2:0, 2:1로 잡아내며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려냈지만, 6차전 원정에서 바르셀로나와 비기고, 셀틱이 모스크바를 이기면서 결국 벤피카는 3위로 탈락하여 유로파 리그 32강 진출로 만족해야 했다.
유로파 32강 상대는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2-1,1-0으로 2경기 모두 이기면서 16강에 진출, 16강상대인 지롱댕 보르도와의 1차전인 안방 경기도 1-0, 원정 경기도 3-2로 이기면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도 1승 1무로 거뜬히 누르고 4강에 진출하여 페네르바흐체와 결승행을 다투게 되었다. 1차전 원정에선 0:1로 지긴 했지만 안방에서 3:1로 이기면서 30년 만에[8] 결승에 진출했다.
'''UEFA 유로파 리그 결승'''
결승 상대는 바로 작년 챔스 8강에서 벤피카에게 탈락을 선사했던 첼시 FC. 하지만 2:1로 패하여 복수 및 51년 만의 유럽 대항전 우승은 실패로 돌아갔다.
12~13 시즌 리그에서는 라이벌 포르투에게 단 승점1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28라운드까지만 해도 무패로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29라운드 포르투 원정에서 당한 1패 때문에 결국 2위로 물러나야 했다.[9] 포르투갈 컵 결승에서도 중위권 팀인 기마랑스에게 1:2로 역전패당해 대망의 '''콩트레블'''을 달성하였다.
3.3. 2013-14 시즌
리그에선 모처럼 순항하여 28차전까지 23승 4무 1패로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3시즌 연속으로 우승하던 포르투가 무려 15점이나 승점이 뒤쳐진 채로 3위, 2위인 스포르팅과도 7점이 벌어졌기에 남은 2경기 여부랑 상관없이 우승을 차지했다.
포르투갈 컵은 4강전에서 바로 리그 라이벌 포르투와 맞붙어 3-1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해 히우 아브와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1-0으로 이기면서 10년 만에 컵 대회 우승을 탈환하며 더블 우승을 기록.
챔피언스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 올림피아코스, 안데를레흐트와 조를 이뤘다. 5차전까지 2승 1무 2패로 조 3위를 거두고 있는데 이미 1위를 확정지은 파리를 안방에서 이겨야 한다.2위인 올림피아코스와 같은 승점이지만 1무 1패로 승자승에게 밀리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6차전 느긋하게 경기를 벌인 파리를 2:1로 이겼으나 올림피아코스도 안데를레흐트를 이기면서 승자승에 밀려 3위로 탈락하며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다. 32강에서 PAOK FC와 맞붙어 1-0,3-0으로 가볍게 털어버렸다. 16강에선 토트넘 핫스퍼를 3-1,2:2로 제치고 8강에 올라 AZ 알크마르와 맞붙어 쉽사리 털면서 4강에 진출, 유벤투스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되었는데 1차전 안방 경기는 2-1로 이겼다.2차전 원정은 득점없이 비기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12-13 시즌에 이은 2년 연속 결승 진출이다(12-13 시즌은 첼시 FC에게 1:2로 패해 준우승). 하지만 13-14 시즌 유로파 리그 결승도 세비야 FC에게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하면서 2회 연속 준우승에 그쳐야 했다.
'''UEFA 유로파 리그 결승'''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했다면 전번 시즌 콩트레블을 만회하는 트레블 우승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준우승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리그와 컵 우승으로 꽤 알차게 보낸 시즌이었다.
3.4. 2014-15 시즌
2014년 8월 20일 QPR의 줄리우 세자르를 자유계약(FA)으로 영입. 하지만 주전급 자원인 로드리고 모레노. 에세키엘 가라이, 얀 오블락, 오스카 카르도소, 길레르미 시케이라, 누누 고메스 등을 떠나보내면서 전력에 막대한 손실이 생겼다. 다만 니콜라스 가이탄이나 엔소 페레스 등 팀을 떠날 것이 유력했던 에이스가 둘이나 남아서 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밖에 그리스 국가대표 수비형 미드필더 안드레아스 사마리스를 영입하였다.
12월 29일, 엔소 페레스가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이로써 에이스 중 한 명을 잃었다(...)
챔피언스리그 32강에서는 레버쿠젠, AS 모나코, 제니트라는 꽤 까다로운 조에 편성되어 1승만을 거두면서 조 4위로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33라운드에 2연패 우승을 확정지었다.마지막 경기를 2위 포르투가 이겨도 같은 82점이지만 골득실차가 8골이나 차이가 나고 리그에서 포르투를 상대로 1승 1무 (2-0,0-0)를 기록하여 승자승에서 앞서기에 우승을 차지했다. 타사 드 포르투갈은 8강에서 브라가에게 1-2로 패해 2년 연속 우승을 실패했다. 그나마 타사 다 리가는 결승에 진출해 마리티무랑 5월 29일에 결승전을 치룬다. 결승에서 마리티무를 꺾고 6번째 우승을 달성하였다.
3.5. 2015-16 시즌
일단 감독부터 바뀌었다. 조르제 제수스 감독이 라이벌 스포르팅 CP와 계약하면서 벤피카는 루이 비토리아 감독을 선임했다. 이후 팀의 주전 오른쪽 풀백이였던 막시 페레이라가 계약 만료 이후 보스만 룰로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이에 따라 93년생 유망주 넬슨 세메도가 주전 라이트백으로 자리 잡았다. 벤피카는 이적 시장에서 노쇠화 된 줄리오 세자르를 대신하여 에데르손 키퍼를 영입한 것을 비롯, 기존의 유망주들이였던 빅토르 린델뢰프, 헤나투 산체스, 겨울 이적시장에 영입된 FC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 알렉스 그리말도 등을 주전으로 활용하며 세대 교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발렌시아 CF와 1년 임대 형태로 가 있던 안드레 고메스, 호드리구 모레노, 주앙 칸셀루가 완전 이적하면서 벌어들인 이적료로 라울 히메네스같은 좋은 영입을 했다.
포르투갈 리그에서는 라이벌 FC 포르투에게 더블을 당했지만 34경기에서 22실점만을 허용하는 굳건한 포백라인에 더불어 조나스 올리베이라, 니콜라스 가이탄의 폭발적인 역습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29승을 기록, 승점 88점으로 86점의 스포르팅 CP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조나스는 골든 슈 경쟁까지 할 정도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자랑했고 가이탄 역시 시즌 통합 11골과 19도움의 환상적인 활약을 하며 자신이 벤피카의 에이스임을 증명해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까지 가는 등 약진했는데, 갈라타사라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FC 아스타나와 한 조를 이루며 조 2위로 진출했다. 참고로 이때 아틀레티코 원정에서 가이탄의 맹활약으로 1-2로 역전하면서 귀중한 승점 3점을 따냈는데, 아틀레티코는 이 경기를 전후로 비센테 칼데론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무패행진을 달렸다는 점 에서 벤피카를 칭찬할만 하다. 조 기록은 3승 1무 2패, 승점 10점.
16강에서는 H조에서 헐크를 앞세운 막강한 공격력을 (6경기 13골) 자랑하며 손쉽게 조 1위로 올라온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만났고, 많은 사람들이 제니트의 승리를 예상했으나...1차전 홈에서 조나스의 90분 추가시간 골로 1-0, 2차전 러시아 원정에서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뽑아냈다. 보다 실리적인 축구로 아르템 주바와 헐크를 앞세운 제니트의 거센 공격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평가. 이 두 경기에서도 가이탄과 조나스의 활약이 돋보였다. 총합 3-1로 8강 진출.
8강 추첨도 하기 전에 VfL 볼프스부르크와 함께 강팀들의 대진 소원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분데스리가의 골리앗 FC 바이에른 뮌헨과 만났다.
1차전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거센 공세에 이은 아르투로 비달에게 2분만에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이후 단단한 수비로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원정에서 최대한 틀어막고 홈에서 뮌헨을 공략하겠다는 비토리아 감독의 의중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포인 조나스가 경고누적으로 2차전 출전하지 못하고 에이스 가이탄 역시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벤피카의 탈락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
2차전, 전반전에 역시 바이에른이 점유율을 많이 가져갔지만 벤피카는 탄탄한 포백으로 잘 버텨냈고 결국 한 두번의 역습 찬스를 잘 살려냈다. 결국 조나스 올리베이라를 대신해 선발 출장한 라울 히메네스의 헤딩골로 앞서나간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헤나투 산체스와 류보미르 페이사가 상당한 활동량으로 상대 빌드업의 시작점인 사비 알론소를 압박했고 바이에른의 빌드업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중원 기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간게 페이스가 벤피카로 넘어간 원인. 하지만 이 흐름을 지속 시키는데엔 실패했고 반격에 나선 바이에른이 경기 템포를 올리며 비달의 동점골과 후반전 터진 토마스 뮐러의 역전골로 우위를 가져갔다. 홈에서 궁지에 몰린 벤피카는 닥공을 시전했고 76분에 안데르손 탈리스카의 왼발 프리킥으로 동점골 기록에 성공했지만 두 골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골은 더 이상 터지지 않았고,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바이에른의 입장에서는 이 경기가 헤나투 산체스를 데려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총합 3-2로 탈락.
타사 다 포르투갈에서는 2라운드 라이벌 스포르팅 CP를 만나 2-1로 패배하며 탈락했지만 타사 다 리그에서는 순항하며 결승전 마리티무를 6-2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우승에 성공했다.
루이 비토리아 감독은 벤피카 감독으로서의 첫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이다. 엘리세우(후반기 그리말도)-자르델-린델로프-넬시뉴로 이어지는 튼튼한 포백과 함께 조나스와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의 빅 앤 스몰 투톱으로 이어지는 꽤나 클래식한 4-4-2 전술을 애용했다. 전술 자체로만 보면 킥 앤 러쉬 전술에 가장 특화된 전술이지만, 비토리아 감독의 4-4-2는 롱 볼에 능한 시메오네 식 4-4-2에 가깝다. 13-14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가장 유사. 티아고-가비의 전성기 시절처럼 비토리아의 벤피카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 (페이사/사마리스)와 공격 능력이 좋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한 명 (헤나투/피찌)을 중원에 배치하며 활동량이 높은 선수들로 효율적인 중원을 구축한다. 공격수 역시 라울 가르시아-디에고 코스타 투 톱처럼 개인기량과 침투가 뛰어난 조나스와 포스트플레이 및 연계에서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는 미트로글루의 투톱을 활용하며, 세트피스가 강력한 것과 포백과 미드필더의 간격이 좁은 것 까지 판박. 다만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보단 롱볼 비율이 조금 더 높고 역습의 완성도나 측면에서의 연계력이 조금 떨어지는 편.
다만 리그에서 약체를 상대할 때는 얘기가 조금 달라지는데, 실리적인 축구보다는 측면 윙어 둘 중 한 명과 연계가 뛰어난 미트로글루를 중원에 가담시키며 중원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동시에 반대쪽 윙어와 윙백을 완전히 윙포워드처럼 배치시키고 그쪽 측면을 터는 빠른 템포의 축구를 주로 사용한다. 로베르토 만치니 시절 11-12시즌 맨체스터 시티와 비슷한 지공 형태를 보인다. 똑같은 4-4-2로 상당히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감독으로 평가된다.
3.6. 2016-17 시즌
포르투갈 리그 우승으로 챔피언스리그 1번시드를 받았고 SSC 나폴리, 디나모 키예프, 베식타쉬 JK와 함께 B조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16강에 진출을 성공했고 상대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결정되었다. 리그에서도 순조롭게 순항중이다.
챔스에선 홈에서 도르트문트를 1-0으로 잡았다!
그러나 원정에서 4-0으로 패배하면서 탈락한다. 이후 리그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면서 여전히 포르투갈 리그의 최강팀임을 입증했다.
3.7. 2017-18 시즌
여름 이적 시장서 주요 선수들을 대거 판매했다. 풀백 넬송 세메두를 3050만 유로(약 409억원)에 FC 바르셀로나로, 센터백 빅토르 린델로프는 3500만 유로(약 440억원)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주전 골키퍼이던 에데르송 역시 4000만 유로(약 504억)의 이적료에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 역시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로 떠났다.
리그에서는 늘 그래왔듯이 스포르팅과 포르투와 순위다툼을 벌이고 있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선 톱시드에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맨유와 바젤, CSKA 모스크바를 만나 '''6전 전패'''라는 충격적 성적을 기록하며 광탈하고 말았다.
3.8. 2018-19 시즌
리그에서는 포르투와 최종전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2시즌 만에 우승했지만, 유로파리그에서는 8강까지 올라와 프랑크푸르트와 만났고, 홈에서의 1차전에서 4:2로 이기고도 2차전 원정 경기에서 2:0으로 져 합산 스코어는 4:4가 됐고, 결국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거해 프랑크푸르트가 4강에 올라가면서 귀신같이 또 유럽 대항전에서 탈락했다. 관련 항목 참조.
3.9. 2019-20 시즌
프리시즌에 열리는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에서 우승했다. 프리시즌인지라 저주를 깼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RB 라이프치히와 올랭피크 리옹에 밀려 조 3위를 기록했고, 유로파리그 32강에서 FC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만나 1-2 패, 3-3 무를 기록하며 탈락했다.
리그에서 포르투에 승점 5점이 뒤처진 채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타사 드 포르투갈까지 포르투에게 빼앗기며 철저한 '''콩'''이 되었다.
3.10. 2020-21 시즌
최근 몇 시즌 동안 리그 및 유럽대항전 성적부진으로 팀 재건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기획하고 있다.
감독으로는 과거 벤피카를 유로파리그 결승에 연속으로 이끌었던 조르제 제수스를 재선임했다.
선수단도 대거 개편 예정으로 이적료를 상당히 쏟아 붓는다는 모양. 얀 베르통헌을 3년 계약으로 영입했다. 또한 에베르통 소아레스, 다윈 누녜스, 루카 발트슈미트를 영입하며 공격진에 젊은 피를 수혈했다.[10] 여기에다 바르셀로나의 센터백 유망주 장클레르 토디보까지 임대영입하며 공언한대로 엄청난 투자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PAOK에 패배하며 일찍 유로파리그로 내려갔다.
본선 진출 실패로 클럽 수입에 차질이 생겨 스쿼드 내 최고 유망주 후벵 디아스를 맨시티에 판매하고, 스왑딜 형식으로 오타멘디를 데려왔다. 스트라이커인 카를로스 비니시우스는 토트넘에 45m 파운드 상당의 완전 이적 조항을 포함한 임대를 단 3m 파운드에 보내게 되었다.
유로파리그 조별리그에서 레인저스 FC에 밀려 조 2위로 다소 불리한 출발을 했다. 그리고 32강 상대로 '''아스날 FC'''가 걸렸다.
12월까지의 분위기는 중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그 및 유로파리그 D조 모두 한끝 아쉬운 2위에 위치했다. 공격진에서는 영입작 3인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수비는 오타멘디의 급격한 폼 하락 등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수페르타사(슈퍼컵) 경기에서 포르투에 2-0 패배를 당했다.
스쿼드 수준에 비해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고 있는데, 1월 16일 FC 포르투 전을 기점으로 2월 22일까지 리그 7경기에서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팀은 '''4위'''로 추락했다.[11] 같은 기간 타사 다 리가 4강전에서 SC 브라가에 패배했고, 스포르팅 CP와의 리스본 더비는 무득점 패배했다.
유로파리그 32강 1차전에서 아스날과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2차전에서는 2-1 역전골을 넣으며 16강으로 가나 싶었지만, 아스날의 전술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3-2 재역전을 허용한 채 탈락했다.
리그 우승은 일찍이 스포르팅에게 기울었고, 벤피카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한 순위 싸움이 절박해졌다. 저조한 공격과 불안한 수비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유로파리그 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4. 스쿼드
4.1. 유명 선수
- 포르투갈
- 마리우 콜루나 : 1953-1970
- 에우제비우: 1961-1975[12]
- 움베르투 코엘류 : 1968-1975, 1977-1984
- 후이 코스타: 1990-1994, 2006-2008
- 파울로 푸트레: 1993
- 누누 고메스: 1997-2000, 2002-2011
- 데쿠: 1997-1999
- 시망 사브로자: 2001-2007
- 티아구 멘데스: 2002-2004
- 주제 폰테: 2006-2008
- 파비오 코엔트랑: 2007-2011
- 안드레 고메스: 2012-2014
- 베르나르두 실바: 2013-2014
- 헤나투 산체스: 2015-2016
- 넬송 세메두: 2015-2017
- 주앙 펠릭스: 2016-2019
- UEFA
- 미셸 프뢰돔: 1994-1999
- 로베르트 엔케: 1999-2002
- 피에르 판 호이동크: 2000-2001
- 즐라트코 자호비치: 2001-2005
- 코스타스 카추라니스: 2006-2009
- 한스 외르그 부트: 2007-2008
- 하비 가르시아: 2009-2012
- 악셀 비첼: 2011-2012
- 호안 카프데빌라: 2011-2012
- 놀리토: 2011-2012
- 네마냐 마티치: 2011-2013
- 얀 오블락: 2013-2014
- 빅토르 린델뢰프: 2013-2017
-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 2015-2017
- CONMEBOL
- 클라우디오 카니자: 1994-1995
- 루이장: 2003-2018
- 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 2007-2008
- 앙헬 디 마리아: 2007-2010
- 다비드 루이스: 2007-2011
- 오스카 카르도소: 2007-2014
- 막시 페레이라: 2007-2015
- 파블로 아이마르: 2008-2013
- 하미레스: 2009-2010
- 하비에르 사비올라: 2009-2012
- 니콜라스 가이탄: 2010-2016
- 에세키엘 가라이: 2011-2014
- 엔소 페레스: 2011-2014
- 길레르미 시케이라: 2013-2014
- 조나스 올리베이라: 2014-2019
- 에데르송 모라에스: 2015-2017
- CONCACAF
- 다비드 수아소: 2008-2009
- CAF
- 만토라스: 2001-2011
4.2. 영구결번
2000년대 SL 벤피카 소속으로 활약했던 공격수인 미클로스 페헤르(1979~2004,헝가리)의 등번호인 29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2004년 1월 25일 비토리아 SC와의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안타깝게도 다음날 오전 0시 10분에 사망했다.[13] 이후 벤피카는 선전을 하면서 2004~05 시즌 페넌트레이스를 우승하고 우승 트로피를 바치며 그를 기렸다.
5. 기타
- 2006년 11월 9일, 벤피카는 가장 많은 유료 회원인 160,398명이 등록됨에 따라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2009년 9월 30일, 벤피카는 200,000번째 유료 회원이 등록되었다고 발표되었다. 2004년 5월, 벤피카는 94,714명에서 200,000명으로 회원을 늘리기 위해 소시오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로 5년 후, 벤피카는 기존의 94,714명의 회원에서 105,000명이 넘는 신규 유료 회원을 추가하여, 회원수가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벤피카는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클럽으로 손꼽힌다.
-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구단이다. 1970년 9월에 에우제비우가 소속될 당시 내한하여 국가대표팀인 청룡(1진)팀과 백호(2진)과 친선경기를 가진 바 있다. 경기 결과는 백호는 0-5로 뭉개졌고 청룡은 이회택이 1골을 먼저 넣었지만 페널티골를 허용하며 1-1로 비겼다. 여담으로 당시 벤피카 주전 가운데 한 사람이 나중에 한국 국대 감독을 지냈던 움베르투 코엘류.
- 세계적인 명장 주제 무리뉴가 처음으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팀이 바로 벤피카다. 1999-2000시즌이 끝나고 유프 하인케스가 벤피카의 감독직을 사임하자 하인케스의 후임으로 무리뉴가 들어왔지만 구단 수뇌부와의 충돌로 인해 9경기만에 무리뉴는 팀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2년이 지나 FC 포르투의 지휘봉을 잡은 무리뉴는 포르투의 두번째 전성기를 열었고 벤피카는 무리뉴를 붙잡이 않은점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한다.
- 유럽대항전에서 안습의 콩라인으로 분류되는데 거기다가 덧붙이자면 레알 마드리드 다음으로 두번째로 챔스우승을 하였고 참가 시즌도 레알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 그 하기 힘들다는 무패 준우승도 리그에서 한번, 유로파 리그에서 한번 총 두번 해봤다.
77/78 시즌 21승 9무 0패 리그 준우승 & 13/14 시즌 결승전까지 6승 2무 / 결승전 0:0 승부차기 패배
- 구단 자체 TV 채널을 운영하며, 영어로도 중계한다. 근데 영어 해설 위원들 억양에 유럽 포르투갈어 억양이 섞인 걸 봐서 포르투갈인들이 직접 해설하는 모양이다. Eurosport 아태판이 이들의 중계를 받아 내보내니 참고해서 직접 들어보자.
- FC 포르투와의 더비가 있는데 더비이름이 오 클라시쿠(O Clássico)이다. 포르투갈어로 엘 클라시코를 뜻한다.
- 여자 축구팀도 있다. 벤피카 여자 축구팀은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먹는 수준으로, 아니 그냥 그 어느 팀도 못 건드리는 수준의 강호 그 이상이다. 어느 정도냐면 15경기(리그+컵) 중 15경기 전승은 물론이고 261득점 0실점이라는 기록과 함께 야구에서나 보일법한 스코어를 매경기마다 펼치는 중. 열 골을 넘기는 경기가 대다수이고 그나마 가장 적게 득점한건 스포르팅과의 경기인데, 그 적게 득점한거도 4골차 승리(...). 한 경기에 가장 많이 터트린 득점수는 28득점.
- 서정원이 이적할 뻔했던 곳이다. 사실은 공식 선수로서 프리 시즌 경기도 뛰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국내 복귀를 해야만 했다. 자세한 것은 서정원 문서 참고. 그렇지만 벤피카 측에서는 여전히 서정원을 공식 선수로 예우하고 있음이 밝혀졌고, 이를 뒤늦게 안 서정원이 직접 벤피카에 확인차 연락을 했다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관계자가 구단에 찾아와달라고 해서 만남이 성사, 서정원의 이름이 프린팅 된 9번 유니폼을 건넸다. 본인 인증샷
6. 같이 보기
[1] 바이에른 뮌헨과는 창단일이 단 하루 차이다.[2]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제2홈구장이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급 위상. 참고로 제1홈구장은 리스본 외곽에 위치한 37,593명 규모의 자모르 국립 경기장으로 국내 컵 대회 결승전 경기도 치러진다.[3] SL 벤피카, FC 포르투, 스포르팅 CP. 즉 포르투갈 리그의 빅3이다.[4] 헝가리가 자랑하는 전설적인 명장 중 한명이다. 선수시절에선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은퇴 후 감독으로써 헝가리,오스트리아,이탈리아,아르헨티나,포르투갈,스위스,루마니아,그리스,브라질,우루과이,키프로스의 클럽을 지휘하는 등 북미,남미와 유럽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었으며 벤피카에선 에우제비우와 함께 UEFA 챔피언스리그(당시 유러피언컵)을 두번이나 제패하는 등 정상급 감독이었다.[5] 챔피언스리그 15번, 유로파 리그 2번,컵 위너스 컵 3번[6] 챔피언스리그 1번, 유로파 리그 1번, 컵 위너스 컵 2번[7] 90년대 이전에는 빅 리그 팀이 아니더라도 8강에 간혹 진출하는 팀들이 있었다지만 딱 의외의 모습만 몇번 보여주는것에 그쳤을 뿐이었고 1993년 유로피언 컵이 챔피언스리그로 개칭되면서는 더욱 리그간 격차가 더 심해져 이후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할것이라 생각한 팀들이 8강에 올라오면 거의다 '''이변'''수준의 평가를 받는다.[8] 82/83 시즌 UEFA 컵 시절 RSC 안데를레흐트에게 패해 준우승.[9] 심지어 패배를 확정지은 골도 라스트 미닛골이였다. 포르투의 공격전개때 2대1 패스로 공간을 만들어낸 켈빈의 슛팅이 강하게 땅볼로 가 반대쪽 골대에 꽂히며 패했다.[10] 이들은 각각 7번, 9번, 10번을 배정받았다.[11] 프리메이라 리가에서 강호로 분류되는 팀은 많지 않다. 포르투-벤피카-스포르팅이 굳건한 3강을 구축하고 있고, 넓게 잡아도 브라가, 비토리아 정도로 5개 팀을 넘지 않는다. 이 중 4위라는 것은 최다우승팀 벤피카에게 치욕에 가까운 성적이다.[12] 벤피카의 황금기를 이끈 선수이다.[13] 당시에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가 벤피카 감독을 맡았었다.(2002~2004년)